[한국강사신문 강동섭 칼럼니스트] 십여 년 전 미국에서 나온 기사입니다. 수많은 직업들 중에 어떤 직업이 스트레스가 제일 심한 지 조사를 했답니다. 스트레스 심한 직업 1등은 수술하는 외과의사, 2등은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민항기 조종사, 3등은 텔레비전 생방송 진행자가 꼽혔지요.

그 때쯤 세상에서 텔레비전 생방송 제일 많이 하는 진행자라는 얘기를 듣던 저는 영광스럽게도(?) 동메달을 수상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생방송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보고 방송하지만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지요. 방송사고는 짤로 만들어져 영원히 온라인 세상을 떠돌아다닙니다. 게다가 홈쇼핑 쇼호스트는 스트레스가 더한 것이 매출의 압박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홈쇼핑에는 매시간마다 목표매출이 정해져 있습니다. 새벽 6시 첫 방송은 보는 사람이 적으니 8천만원, 아침 10시 프라임 시간에는 10억, 오후 2시는 5억, 이런 식입니다. 제가 10억을 팔아야 하는 시간에 들어가서 8억을 팔고 나오면 저는 그날 80점짜리 쇼호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15억을 팔면 150점짜리죠. 만약 5억 밖에 못 팔면 음… 심각해집니다.

먼저 상품을 납품한 업체 사람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옵니다. PD, MD들도 말은 안 하지만 ‘니가 5억을 태웠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 가면 잠이 안 옵니다. 술의 힘을 빌립니다. 불면증과 소화불량, 원형탈모를 달고 삽니다.

스트레스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실수를 하는 진행자들도 많습니다. 초보 방송인일수록 실수를 더 합니다. 실수를 하고 나면 그것 때문에 긴장이 되어서 더 큰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대공포증을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방송인이거나 강사거나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 외과의사 선생님들도, 멋쟁이 파일럿들도 각자 자신들만의 방법이 있겠지요. 대개 골프나 테니스 같은 몸 쓰는 운동을 많이 합니다.

저는 산이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아침마다 기숙사 뒷산을 오르곤 했는데, 쇼호스트가 되고 아웃도어 제품 방송을 많이 하다 보니 전문성을 기르고 싶어 암벽등반, 빙벽등반까지 시작하게 되었지요. 뭐든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해외 원정도 여러 차례 다녀오고 대한민국 산악계에서 이름도 어느 정도 알려진 산악인이 되었습니다. CJ오쇼핑에서는 등산동호회를 만들어서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고 몇몇과는 해외 원정등반도 함께 다녀왔답니다.

20년 넘게 등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힘들게 산에 왜 가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모범답안을 내어놓은 선배들이 계십니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다 1924년 실종된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명언을 남겼지요.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장엄의 미학(Ästhetik des Erhabenen)’이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장엄한 자연 앞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세상을 전부 가지는 것 같은 절대적 시선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는 말도 하셨고요.

전 산이 그냥 좋습니다. 언제 어느 산을 누구와 가도 좋습니다. 덥거나 춥거나 여럿이 가거나 혼자 가거나 늘 좋습니다. 워킹만 해도 좋고 암벽등반을 해도 좋습니다. 정상을 가도 좋고 안 가도 좋습니다. 몇 달 전엔 너무 안 좋은 일을 당해 공황장애도 겪었지만 다시 산에 다니면서 치유를 얻었습니다. 산에 가면 이렇게 마음이 치유됩니다. 스트레스 제로가 됩니다.

또 암벽등반을 하다 보니 겁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엘 캐피탄(El Capitan)이라는 1천 미터 높이의 암벽은 1주일 이상을 먹고 자고 하면서 기어올라야 합니다. 수백 미터 절벽에 매달려 잠을 자다 보니 생방송을 진행하고 수백 명 청중 앞에 서도 전혀 떨리지가 않습니다. 체력과 건강은 말할 것도 없지요.

거기다 세상의 수많은 산에 올라 최고의 장엄한 광경들을 목격하고 오니 가슴이 커졌습니다. 누구든 무슨 일이든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교과서에서 배운 호연지기인가요. 여러분도 각자 하는 일은 다르겠지만 모두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 세상에 있나요?

다시 산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라 한 것은 우리나라 취미 1등이 몇 십년 동안 등산이다가 몇 해 전부터 낚시에 밀렸기 때문입니다. 지겹거나 지루할 일 없고, 큰 돈 들지도 않고, 나이 먹어서도 계속할 수 있고, 건강과 체력을 노년까지 유지하는 데에는 산이 최고인 듯합니다.

앞으로 20년 넘게 방송쟁이로 또 산악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지면을 통해서 그리고 산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강동섭 칼럼니스트는 2001년 CJ홈쇼핑에서 방송을 시작해 현재는 신세계TV쇼핑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금) 신세계라이브쇼핑 개국 7주년 기념식에서 2022년 <올해를 빛낸 쇼핑호스트 상>을 수상했다. 가전, 레포츠, 식품, 주방,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남성 쇼호스트로서는 드물게 여성 속옷, 보석 판매까지 섭렵한 진정한 올라운드 쇼호스트로 22년간 약 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언택트건 컨택트건 잘 팔리는 말솜씨』가 있다.

현재 다양한 방송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SNS로 고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스마트 스토어와 직접 판매를 통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방송 아카데미와 여러 기업체에서 스피치, 설득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관련 강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